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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나를 놨으면 좋겠다 제발 나는 아빠의 무책임과 엄마의 불안, 엄마 아빠의 지속적인 부부싸움과 쉴새없는

나는 아빠의 무책임과 엄마의 불안, 엄마 아빠의 지속적인 부부싸움과 쉴새없는 돈타령으로 정신적 불편감을 느끼며 자라왔다. 나의 고통이나 힘듦을 토로해도 돌아오는 것은 무시나 짜증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따금 엄마는 자신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네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건 결국 내가 널 잘못 키웠다는 방증 같아서 속상해진다고 했다. 내 슬픔마저 본인의 속상함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는 아마도 가벼운 나르시시스트 환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는 그 옆에서 한숨을 쉬다가 방으로 들어가거나 나를 향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학생 때는 고대하던 동아리 활동이 타인의 실수로 완전히 망가지는 바람에 억울하고 슬퍼서 울었는데 그때도 아빠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그만 좀 처울라고 그랬다. 그러다 결국 욕짓거리를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난 그 뒤로 아빠 앞에서 울지 않았다.고등학교 3학년 때는 대학교에 원서를 넣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 아빠가 참견했다. 여기는 이래서 안 되고 저기는 저래서 안 된다길래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내 성적으로는 어차피 학교도 못 고른다고. 사실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돈이나 벌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엄마랑 아빠가 대학교는 꼭 가야 한다고 외쳤다. 대졸인 아빠는 번듯한 공무원이 됐고 고졸인 엄마는 대기업에 손쉽게 입사까지 했던 몸이니 그들의 조언을 듣기로 했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잘 따라주진 않았다. 그래도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학과에 지원하려는데 대체 거길 졸업하면 뭐 할 거냐는 물음이 붙었다. 그건 엄마 아빠 치고 깨나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난 조금도 그 질문이 고맙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체 그 학과 졸업하면 뭐 할 거냐는 그들의 질문은 벌써 세 번째였기 때문이다.어찌저찌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남들은 겨우 그 정도 성적으로 장학금 받는 게 자랑이냐고 할 정도의 지잡대였고 그 정도의 미달 학과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속에서 나름 노력하며 살았다. 정확하게는 엄마 아빠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돈 돈 거리던 엄마 아빠 때문에 결국 나는 술도 담배도 하다못해 피시방이나 화장품샵에도 제대로 들러본 적 없는 무채색의 여대생이 됐다. 그 상태 그대로 졸업했다. 졸업하면 대단히 멋진 사회인이 될 줄 알았는데 졸업해도 난 여전히 무채색이었다. 졸업한 기분을 제대로 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돈을 벌려고 졸업 학기부터 일을 했기 때문이다. 졸업식은 평일이었고 당연히 난 갈 수 없었다. 물론 하루 정도 빼서 졸업식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이 정도의 수준과 스펙을 고용해 준 회사에서 내가 졸업식 때문에 하루 빠지겠다고 하면 그날로 나를 회사에서 빼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졸업식을 지나쳤고 정신 차리니 졸업식으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있었다. 시간이란 그렇게 지났다.일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팀장 한 명이 없다고 안 돌아가는 회사면 그건 ㅈ소라는데 내가 하던 일은 나같은 인턴 한 명이 없어도 ㅈ되는 회사였다. 첫 월급이 어떻게 250일 수 있는지 생각했는데 그건 인턴 두 명한테 가야 할 월급을 나 한 명한테 주는 거였다. 주말도 반납하며 일해야 했다. 쉬고 싶어도 상사들이 일을 꼭 토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에 줬다. 그러고 저들은 잤다. 그때 내가 제대로 전화해서 깨워주지 않으면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어서 난 결국 그들의 모닝콜 같은 런치콜을 해줘야 했다. 거기서 현타가 왔다. 잠도 자지 않고 생각했다. 생각이 길어지니 잠이 안 오는 건 당연했다 종국에는 우울증이 왔다. 출근이 싫었고 퇴근은 더 싫었다. 집에 가도 어차피 또 일을 해야 했다. 겨우 짬을 내서 너댓 시간을 자도 눈 뜨면 다시 출근이었다. 그러다 우울증을 동반한 번아웃이 왔다.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한 달 전에 말하는 건데도 상사한테 온갖 쌍욕을 먹으면서. 그 뒤로는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타 먹으며 백수 생활을 하다가 더는 눈물과 두통 없이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을 때쯤 월급 200 정도의 중소에서 또 일을 시작했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편했다. 청년들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힘들게 취업했다가 전부 그만두고 쿠팡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건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몸을 고되게 굴렸다. 그러나 불행한 점은 내 키가 작은 편인데도 키-몸무게를 했을 때 110이 넘는 다소 저체중인 몸이었고 그 때문인지 저혈압/빈혈/어지럼증 등을 아주 달고 사는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 점은 몸으로 일해야 하는 곳에서는 큰 마이너스가 됐다. 마음은 편했지만 내 몸이 편하지 못해서 결국 잘렸다. 이제 막 세 달 일했을 때의 일이었다.잘렸다는 건 나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잘렸다는 사실 정도는 통보했지만 그 외에 슬프다거나 속상하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 거라거나 그런 이야기는 일절 건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는 건 약점 잡히는 일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날 겪은 것들이 많아서 더는 약점 잡히기 싫었다. 그렇게 우울한 실직자로서 며칠을 백수로 보내던 때에엄마 아빠가 말했다. 너 결혼해라.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되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간결했다. 20대 중반이 됐으니까 결혼을 하랬다. 결혼 시장에서 20대 중반인 여자는 30대보다 가치가 높다는 걸 나 역시 모르진 않았지만, 어디 결혼이 어린 나이 하나로 전부 해결되던가? 사랑만으로 결혼해서 모든 집이 행복할 것 같으면 나의 엄마와 아빠는 왜 맨날 그렇게 싸웠는가? 왜 간간이 이혼을 운운하며 자식들에게 불안을 심고 나아가서는 너희들이나마 우리한테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너희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죄책감을 심었는가? 왜 아빠는 나를 한심하고 멍청하다는 듯이 쳐다봤고 왜 엄마는 나를 자신의 두 번째 인생처럼 여기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나에게 강요했는가? 정말이지...결국 엄마 아빠한테 말도 안 돠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덜컥 결혼하냐고. 하다 못해 지금 당장 나는 연애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냐고. 그러자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잘 살고 있다고? 잘 살고 있다고? 어린 애한테 매일같이 돈에 쪼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학원에도 가지 말라던 사람들이, 돈 없어서 대출 끼고 월세 살면서도 그 월세마저 밀려서 냈던 사람들이, 지인들한테 돌려막기 식으로 돈 빌려가면서 살아야 하루하루를 먹고 자고 숨쉬던 사람들이 어떻게 당장의 오늘만 두고 나에게 이정도면 잘 사는 거니까 당장 결혼하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건 모로 봐도 학대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을 강요하는 것도 학대다.어차피 나 한 명도 건사하기 힘들 인생이었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말했다. 오늘부터 비혼주의자니까 건들지 말라고. 그러자 엄마랑 아빠는 나에게 악담을 했다. 우리가 친척들과 조카들에게 보낸 축의금만 해도 얼만데 그걸 돌려받지 않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멍청하다고 욕한다, 결혼 안 하면 나중에 남들이 외롭고 불쌍하게 볼 거다, 엄마 아빠 친구들 중에도 결혼 안 한 애들 있는데 우리가 부러운지 요즘은 우리한테 연락도 잘 안 한다.......내 결혼에 나를 위한 말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하물며 결혼 종용도 아닌 강요였으면서.독립은 하고야 싶지만...이들은 내가 몰래 독립해서 살아도 어떻게든 내 자취방에 기습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애초에 내 돈으로 내가 나가 살겠다는데 독립에 몰래라는 개념이 어딨고 자취방에 기습 방문하겠다는 가족이 도통 어디 있냐마는 ㅋㅋ 어쨌든 독립도 자취도 쓸모 없을 것 같아서 내 돈 내고 나가기가 두렵다. 돈도 별로 없는데 이걸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얻은 자취방에 이들이 찾아온다면 난 그날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조용히 나가서 잠적? 이들은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단정짓고는 경찰에 신고할 사람들이다. 결국 경찰서에서 붉어진 얼굴로 멋쩍음을 감당해야 하는 건 나라는 뜻이다.아주 슬픈 점은 이들은 자기들이 참 좋은 부모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과 우울을 모두 물려주고서는 우린 참 대단한 부모였다고 저들끼리 위로하고 칭찬한다. 그 모습이 그렇게 꼴같잖을 수가 없다.곧 새로운 일(그래봤자 전공 못 살린... 그저그런 월급 180 막일)을 시작할 텐데...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니 있던 정도 다 떼고 다들 도망갈 것 같고... 솔직히 남 우울한 이야기 듣는 게 마냥 흥미로운 일은 아니라는 걸 엄마를 통해 숱하게 느껴왔기에 그냥 그전에 한탄이라도 해 보고자 여기에 적는다.이걸로 나도 조금은 후련해지겠지,뭐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고시원은 돈 많이 없어도 생활 가능하고

주민등록 전입신고 안하면 못 찾아오고

어떻게든 알고 찾아오면 다른 데로 또 가면 되고...

경찰에 신고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노출하거나 연결해주지 않아요.

나이도 젊은 사람들이 꼰대 중의 꼰대들이네,

벗어나서 편하게 사세요.